한국에서 개봉한 청불 해외 독립영화로서 최고의 성적을 갱신하고 있는 서브스턴스를 보고 왔습니다.
기사에서 소지섭 언급하는 게 자꾸 보이길래 뭔가 했더니 투자를 하셨다고 해요. 엄밀히 말하면 스튜디오 찬란에 투자하는 거고, 찬란에서 해외 독립 영화들을 수입해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재밌게 본 (비록 영화관이 아닌 넷플릭스로 보긴 했지만) 악마와의 토크쇼도 찬란에서 수입한 거라고 하네요.
어쨌든 화제의 작품 서브스턴스 후기와 소소한 해석입니다. 해석글이 굉장히 많이 올라오던데 스포일러 보고 봐도 충격적이니 취향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홍보 문구에 '미친 영화'라는 게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좀 흔하기도 한? 그런 자극적이고 질 낮은 문구가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까 진짜 개미친 영화입니다. 충격적이고 슬퍼요.
보통 영화관에서 영화 끝나고 감독 이름이 뜨면 사람들이 움직이고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리는데 서브스턴스는 끝나고 감독 이름, 주연 이름 다 나올 때까지 쥐 죽은 듯이 조용했습니다. 전체 크레딧이 올라올 때가 되어서야 관람객들이 소리를 내더라고요. 저도 얼어붙어서 크레딧 나올 때도 가만히 있었네요. 어벙하게 입 벌린 채로ㅋㅋㅋㅋㅋㅋㅋㅋ
그만큼 정말 충격적이고 강렬한 영화입니다. 어느 리뷰 중에 '끝까지 가는 영화'라고 하던데 맞는 것 같아요. 정말 끝장을 봅니다.
고어한 영화이긴 한데 그런 장면들이 우리가 쉽게 겪을 수 있는 고통은 아닌 데다 솔직히 고어 장면보다 다른 장면들이 더 고통스럽고 충격적이기 때문에 보기 어렵진 않으실 거예요.
*영화관에서 본 거라 이미지는 인터넷에 올라온 것들 캡처했습니다.
전 스포를 다 보고 갔는데도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SNS에서 몇몇 주요 장면 스포를 봤고 예랑가랑 3분 요약 영상도 본 상태였습니다. 예랑가랑 영상이 정말 잘 요약(?)되어 있긴 한데(순서가 좀 다르긴 함) 막상 실제 영화를 보면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처음에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남자 얼굴을 너무 가까이에서 촬영해서 부담스럽습니다. 진짜 어떻게 이런 구도를;; 자꾸 고개를 뒤로 젖히게 됩니다. 영화관이라서 의자에 파묻힌 채로 봐야 됩니다. 그래도 너무 가까워서 부담스러워요. 이후에 새우 먹는 것도 정말; 화장실에서 손도 안 씻으면서 쪽쪽 빨아먹어요. 드러워 죽겠음; 앞으로 한 달 동안 껍질 있는 새우 금지입니다.
엘리자베스를 해고하는 남자가 50이 넘었으니 끝난 거 아니냐는 말을 하는데 엘리자베스가 '뭐가 끝나죠?'라고 묻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하고 회피하죠. 지들도 본인들이 논리적이지 못한 걸 알아ㅋ
새우 처먹는 장면도 그렇지만 영화가 전체적으로 일상적인 소리들을 굉장히 크게 녹음했습니다. 예민한 사람 입장에서 사는 느낌이었어요. 음악은 계속 쿵! 쿵! 쿵! 거리고요. 좀 시끄러울 수 있습니다.
욕실에서 옷을 다 벗은 모습이 나오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야하다는 생각은 많이 안 드실 겁니다. 영화의 분위기가 많이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이후에 지나치게 신체를 클로즈업해서 촬영하는 장면이 많아서 좀 부담스럽고 불편하긴 합니다. 사람들(특히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성의 몸들을 일부러 과장해서 보여주는 느낌이죠.
좀 웃겼던 장면은 서브스턴스 부작용으로 급속 노화된 엘리자베스의 엉덩이를 보여줬다가 밖에서 수를 찾으며 문을 두들기는 남자 엉덩이 보여주는 컷입니다. 갑자기 엉덩이 비교샷 ㅋㅋㅋㅋㅋㅋ 남자 엉덩이에 털 개많음; 니들 이 엉덩이가 끔찍하냐? 니들은 어떤데?!?!?!라고 소리치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엘리자베스의 모습과 수의 모습, 엘리자베스의 모습과 남자들의 모습을 비교하는 장면이 자주 나와요.
몸 관련 얘기 하니까 생각났는데 마지막쯤에 수가 엘리자베스 쫓아가서 때리는 거 정말 잔인하고 무자비했습니다. 둘 다 엄청 건강(?)하더라고요. 엘리자베스는 몸이 급격히 늙어서 움직이기 힘든 상태인 줄 알았는데 잘 돌아다니고(요리도 함;) 수는 엘리자베스를 발로 뻥 차서 날릴 만큼 튼튼합니다.
요리 얘기 하니까 또ㅋㅋㅋ 수의 모습을 엘리자베스가 요리하고 있는 생고기랑 번갈아가며 보여주는데 마치 TV에 보이고 있는 수의 아름다운 신체 부위들이 한낱 고깃덩어리일 뿐이라는 것 같았어요. 육식의 성정치가 갑자기 떠오름;
약간 의문이었던 안마기 광고. 이 장면은 '여성' 반지가 실용적인 안마기보다 훨씬 비싸다는 점에서 핑크텍스를 말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더라고요. 저는 그냥 안마기가 여자 가슴처럼 생겼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캡처된 걸로 보니까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뭔가 좀;;
황당했던 장면은 동창 만나는 거.ㅋㅋㅋㅋㅋㅋ 아니 무슨 중학교 동창을ㅋㅋㅋ 그동안 한 번도 안 만난 걸 보면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연락처 적은 종이도 진흙탕에 떨어트렸으면 새로 써주지 그걸 그냥 주고 있냐? 그 와중에 엘리자베스는 그 동창 놈이 '여전히 예쁘다~'라며 칭찬해 줬다는 이유로 관심에 고파서 만나려고 하는 게 슬펐네요.
동창 얘기가 나왔으니 쪽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서브스턴스를 보기 전에 트위터에서 쪽지 글씨체 관련 해석을 봤었거든요. 서브스턴스를 추천해 준 간호사의 쪽지와 병원 앞에서 만난 동창, 수와 하룻밤 놀고 간 오토바이남의 필체가 똑같은 걸 보면, 혹시 이들이 모두 서브스턴스 관련인(개발자, 판매자 등)이 아니냐는 겁니다. 동창도 서브스턴스를 사용해서 그 오토바이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냐는데... 엥; 오토바이남이 그렇게 잘생겼던가...? 어쨌든 그런 해석인데요.
링크: https://x.com/carainmycrib/status/1880530306803069407
영화를 보고 나니까 전혀 공감이 안 됐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간호사와 수의 모습은 딱 봐도 사람들이 욕망하는 젊고 탱탱한(예랑가랑 영상 보고 나니까 자꾸 탱탱하다고 함;) 모습인데 오토바이남은 그런 식으로 연출되지 않았잖아요. 막 피부가 맨질맨질 번쩍거리지 않잖아요. 게다가 엘리자베스에게 지나치게 험악하게 구는 걸 보면 동창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네요.
찾아보니 방송국에서 준 카드에도 같은 필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저는 저게 다 짜인 각본이라는 걸 암시하는 떡밥이 아니라 사회를 표현한 게 아닐까 싶어요. 더 젊고 예뻐질 수 있는 약을 추천해 주는 간호사, 여전히 예쁘다며 다가온 동창, 예쁜 수를 계속 만나고픈 오토바이남, 예쁜 여자를 원하는 방송사 전부 사회가 원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뭔지를 알려주잖아요. 사회 그 자체니까 굳이 다른 필체로 쓸 필요가 없는 거예요. 다들 주인공에게 원하는 게 같은 똑같은 사람들인 거죠. 사회는 아름다운 엘리자베스/수만을 원합니다.
그냥 예산이 적은 독립 영화라서 촬영하던 스탭 중 아무나가 쓴 거 아니냐고도 하던데 쪽지를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에서 필체를 신경 쓰지 않았을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신경 쓰지 않았다면.... 뭐 그럴 수 있지.ㅋㅋㅋ
어쨌든 필체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이 영화를 보면서 간호사, 동창, 오토바이남 등등에 뭐가 있다고 해석한다면 그건 어떻게든 지나가는 남자캐릭터들한테 서사를 부여하고 싶어서 안달 난 일종의 착즙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이 영화에서 그 사람들한테 그런 대단한 음모가 있을 거라는 의미부여를...?
근데 그 남자 간호사는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을 기다려왔을까요? 그런 걸 굳이 들고 다닐 필요가 없잖아요. TV를 보다가 속으로 엘리자베스 스파클도 50 넘었으니 한물갔다고 생각해서 저 사람에게도 서브스턴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을까요? 마침 실려온 엘리자베스를 보고 잘됐다 싶어서 준 거겠죠? 본인은 선의를 베푼 것이라 생각하겠네요. 나중에 어떻게 사나 지켜본 거 개소름 돋는데 막상 나였어도 내가 서브스턴스 준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긴 할 것 같고...
마지막에 새해전야쇼에서 몬스트로엘리자수가 무대로 올라가는데 아무도 막지 않잖아요.
아무도 몬스트로엘리자수를 막아서지 않은 게 황당했는데 모두가 수라는 '사람'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건가 싶었습니다. 가면을 썼으니 어쨌든 겉모습은 멀쩡한 걸 표현한 게 아닐까요? 스태프에겐 일단 빨리 무대에 올려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무슨 일이 있는지는 별로 관심 없고 수의 겉모습(가면)이 대충 괜찮아 보이니 넘긴 거죠.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여도 어쨌든 예쁘장한 얼굴은 괜찮아 보이잖아요?(비록 그게 수도 아닌 엘리자베스의 포스터를 찢어 만든 가면이지만... 비유라고 생각한다면 얼굴은 멀쩡한 상태인 거죠.) 마찬가지로 관객들도 겉모습(가면)이 멀쩡하니 그냥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사를 즐기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엘리자수의 겉모습(가면)에 열광하지만 내면을 드러내자 경악하고 비난하는 거죠. 이 사람들도 결국 엘리자베스/수에게 쪽지를 쓴 사회처럼 아름다운 모습만 원하니까요.
미인들이 방긋방긋 웃지 않고 진지한 얘기 하면 떨떠름해하면서 대충 우스갯소리를 하며 넘기려고 하는 남자들의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코 대신 가슴이 달려있는 게 낫겠다는 이야기가 회상되는 동시에 얼굴에서 가슴 덩어리가 나온 건 정말 웃겼습니다. 옛다 니들이 좋아하는 가슴이다 이러고 던져주는 것 같았습니다.ㅋㅋㅋ 남자들이 환장해 마지않는 여자 가슴이 그저 몸에 달린 '덩어리'일 뿐이라는 것 같았어요. 남자들은 대체 뭘 좋아하는 거니?ㅋㅋ
마지막은 슬퍼요. 아름다운 자신이 사랑받던 순간을 회상하면서 떠나는 게...
가인아씨가 말한 희망 편이 자꾸 아른아른 떠오르네요. 엘리자베스 스파클 레이블 만들어서 사업하는...
사회, 특히 남성들에 의해 강압받는 여성들의 코르셋을 신랄하게 풍자하다 못해 소리를 지르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뭔가 정신 차리자는 생각도 들고...
인터넷에 이 영화 보고 페미니즘보다는 완벽주의 얘기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해석이 좀 갈리는 건가 싶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까 이걸 페미니즘 빼고 해석한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사회의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주주들)이 전부 늙은 남성이고, 그 남성들이 여성의 능력보다는 젊고 예쁜 외모를 가졌는지를 평가하면서 예쁜 여자는 웃어야 한다 이딴 말을 대놓고 하고 있는데 어떻게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을 빼고 해석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사회의 강압이 포인트인데 완벽주의는 무슨;; 성별 빼고 얘기할 거면 차라리 루키즘이 맞지 않을까요.
저는 이렇게까지 충격받은 영화는 처음이에요. 복수는 나의 것(2002)도 충격받았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요. 어떻게 이런 영화가?? 어려운 영화도 아니고 오히려 굉장히 쉬운 영화인데 이런 게 예술 영화구나 싶고; 내가 그동안 본 예술 영화는 다 상업 영화였던 것 같고... 예술 영화의 메시지 전달이 이렇게 단순하고 쉬울 수 있구나 싶네요. 그 방법이 이렇게 강렬할 수가;
영화 보고 나서 하루종일 자기 전까지도 '정말 충격적이었지... 정말 끔찍했지...' 했습니다.
좀 두서없이 쓴 것 같은데 감상평 및 해석은 여기까지입니다.ㅎ 이 영화 보고 나서 최근 나온 신인 여자 아이돌 뮤비 보니까 너무 괴상하게 느껴지네요. 그런 옷 그런 화장 그런 춤을 추는 게. 그냥 아이돌들이 다 이상해 보이기 시작;; 영화의 후유증이 오래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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