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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베들의 시대(김학준)』책 리뷰

by ₊⁺우산이끼⁺₊ 2024.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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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게임업계 집게손가락 사건을 보면서 한국 남자들은 왜 저럴까 싶었다.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 커뮤니티의 회원은 왜 찾는 건지, 어째서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한 자세를 그 커뮤니티의 상징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건지 의아하다.

찾아보니 메갈리아의 로고는 집게손가락, 월계관, 초록색이 합쳐진 형태인데 이 요소들 하나씩 따로 보면 굉장히 평범하다. 집게손가락을 둘러싸는 월계관까지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겨우 집게손가락만으로 그게 메갈리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심지어 엄지와 검지만 편 게 아니라 손을 다 펴고 있어도 검지와 엄지의 모양이 집게손가락처럼 보이면 그걸로도 난리를 친다. 당신들이 마우스를 잡고 있는 손의 엄지와 검지 형태를 보세요. 님 메갈? 페미?

그 논란에 힘을 실어준 넥슨과 기타 다른 게임 회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게임업계 사람들이 남초 커뮤니티 여론에 민감한 건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이건 너무 어이없지 않나? 아니 대체 페미니즘과 집게손가락이 대체 뭔 상관인데.ㅋㅋㅋ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이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보통 일베들의 시대'를 읽게 되었다. 세상에 인셀 커뮤니티가 일베만 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일베화 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김학준, 2022, 오월의 봄)

이 책은 일베의 텍스트 데이터들을 수집해서 분석하고 실제 일베 회원의 인터뷰까지 진행했다. 중점이 일베에 있긴 하지만 초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나라 인터넷 커뮤니티를 전반적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무슨 독서 토론을 할 것도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것들만 몇 가지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순수'함을 '정치적이지 않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책에서는 예시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유민아빠가 나왔다. 나도 참사 때 있었던 일들을 아직까지도 기억하는데 어느순간부터 세월호를 정치질로 인식하며 '그만하라'는 입장을 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유민아빠가 전라도 출신인 데다 금속노조의 조합원이었다고 한다. 보수언론이 싫어할만하다. 책에서 의도한 것과는 다른 얘기일 수는 있지만 이 내용을 보니까 이상하게 한국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꺼리면서 아예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묵살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연예인(그중에서도 아이돌)들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입장도 취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당장 나 같은 경우도 남돌들이 정치색을 티 내는 걸 비판한 글을 쓴 적이 있다.(흑역사도 역사니까 삭제는 안 했음.ㅋㅋㅋㅋㅋ)

일베 회원들의 궁극적인 욕망이자 목표가 '평범함', 특히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는 건 좀 놀라웠다. 평범하게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그 평범함에는 결혼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결혼 자체는 (안 하든 못하든 간에) 일베 이용자들에게 중요한 이슈이자 궁극적인 욕망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중략)... 하지만 결혼도 섹스도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132~133쪽)

나도 SNS 글 볼 때마다 느끼지만 여자들은 결혼 못 하면 못 하는대로, 비혼이면 그냥 안 하는 채로 살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남자들은 어떻게는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커뮤니티 속 남자들은 결혼 못한 여자의 삶을 깎아내리며 그들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글을 생성해 내고, 여자들의 사회 진출을 막으면 결국 결혼하게 될 거라는 개소리까지 하는데 막상 여자들은 혼자 살게 될 남성들의 미래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다. 김치녀니 피싸개니 걸레니 갖가지 창의적인 비속어로 여자들을 깎아내리면서 그런 여자들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뭘까 궁금했는데 그게 '평범함'에 대한 욕망이었다니...

일베의 평범 내러티브에 대한 분석도 있었다. 일베는 자신의 인생을 평범하다고 끌어내리면서 자신이 겪은 삶의 특수성을 최대한 억압한다. 그런 '평범'한 일로 '징징'대는 것은 스스로가 약자라고 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자기 경영에 실패한 개인의 책임이 된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서로의 고통을 무시할 것을 종용한다.

잘한 것도 별 거 아니라며 무시하고, 못했다며 '징징'대는 글에 위로는 커녕 오히려 더 깎아내리는 커뮤니티의 성향이 이런 데서 나오는 걸까 싶다.

글쓴이가 일베 이용자들을 인터뷰할 때 일베의 폭력성과 대비될만큼 공손하고 친절해서 놀랐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 웃겼다.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과 관용은 기실 대단히 표면적인 태도로, 타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데서 기인한 것이며, 따라서 "합성되고 꾸며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위선적인 형태의 호의"라고 할 수 있다. (242쪽)

막상 실제로 만나보니 괜찮았던건 결국 남들한테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를 신경 쓰기 때문이다. 자신은 평범해야 하니까.

장대호 신드롬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의 범인이다. 모텔 종업원이었던 장대호가 진상 손님을 토막 살인하고 이를 한강에 버린 사건이다. 장대호는 마치 자신이 정당한 살인을 한 것처럼 인터뷰했고 28장에 달하는 옥중 회고록을 공개했다. 책에 이 회고록을 분석하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정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의아했다.

글쓴이는 장대호의 회고록에 대해 회고록이 아니라 종이에 쓴 일베 글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의 글을 재구성하다 보면 이것이 과연 모니터 없이 쓴 글인지 의아해질 정도다. ...(중략)... 그의 말들은 모두 일베를 비롯한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을 비난할 때 자주 동원되는 '논거'들이다. 다시 말해, 장대호의 글은 장대호가 쓴 것이지만 장대호의 시각은 찾아보기 어려운 글이다. (293쪽)

읽어보니까 감옥에서 왜 이런 생각을 한 걸까 싶은 주제의 글도 있고 좀 신기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종이에 쓴 거지.

평범한 삶이 도달 불가능한 것이 된 지금, 엉뚱하게도 그에 대한 좌절의 책임을 구조가 아닌 소수자에게 묻고 있다고 할 때, 그래서 사회가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다고 할 때, 다시 사회를 만들어낼 새로운 도덕의 단초는 능력주의가 아닌 평범함을 다변화하는 데 있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평범해지는, 즉 소박하지만 분명히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366쪽)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글이었다. 요즘의 이대남현상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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