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육식의 성정치'를 절반 정도 읽고 말았는데 '부재지시대상'에 대해 기록했던 게 있길래 적어본다.
부재지시대상(absent referent)
육식에 부여된 의미가 사나이다움을 함축하며, 동물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그것에 부재하는 지시대상은 여성.
살아 숨 쉬는 동물은 고기의 개념에서는 부재하는 대상.
부재지시대상은 독립된 실체로서 동물을 망각하게 만들고, 그런 동물을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
'고기'라는 단어에서 동물의 죽음의 실체는 부재되어 있다.
객체화
억압자가 또 다른 어떤 존재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게 만듦.
여성의 자유를 부정하는 성폭행과 살아 숨 쉬는 존재인 동물을 죽은 개체로 전환.
여성들, 즉 여성들의 몸에 가장 빈번하게 가해지는 실제 성폭행은, 이 성폭행이라는 단어가 '지구에 대한 성폭행'에서처럼 다른 대상에 은유적으로 쓰일 때는 부재지시대상이 된다. 이런 용어들은 "여성" 자신이 아닌 여성이 겪은 "경험"만을 환기시킨다. (83~84쪽)
억압을 표현하는 몇몇 단어들 중에는 어느 한 집단의 억압에만 특수하게 적용되는 단어가 있다. 다시 말해, 그런 단어들이 다른 집단의 억압까지 전유한다는 것은 잠재적은 착취라는 말이다. (84쪽)
주체는 우선 은유를 통해 판단 또는 객체화된다. 그리고 절단을 통해 객체화된 대상은 본래의 존재론적 의미와 분리된다. 마지막으로 소비를 통해 주체는 오직 그것을 표상하는 것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 지시대상의 소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되며, 그것을 표상하는 것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즉 절멸시키는 반복 과정이다.(92쪽)
여기에 도살장에서 동물을 분해하는 노동자들에게 활기도 없고 생각도 없다는 내용이 있었나 본데 도살장인 걸 떠나서 컨베이어 벨트 방식이면 다 그런 거 아니냐는 생각을 했었다. 노동자들은... 그냥 노동하는 건데.
은유적으로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동물에게 적용하려고 할 때, 우리 문화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행의 사회적 맥락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이런 선결 조건 없이 동물 억압을 설명하기 위해 단지 여성 성폭행이라는 단어에 의존하는 은유적 차용은, 결국 가부장제의 근원전 폭력에 맞서는 것도, 그렇다고 동물 억압과 여성 억압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122쪽)
우선 남성들은 자신들의 지배에서 상당한 이득을 얻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상추의 고통이 도살 과정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소의 고통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요즘 일주일에 하루이틀이라도 채식을 권장할 때 동물권보다는 건강이나 환경 이야기를 주로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렇게 불쌍하면 식물은 왜 뜯어먹어? 식물은 생명 아니야?'라는 말 때문인데 거기에 대한 반박인 듯하다. 저것밖에 안 써있어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육식의 성정치는 '가부장제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육식을 정당화하는가?'에 대한 책이다. (여성들이 대부분인)채식주의자를 내려치고 비웃는 행태에 의문이 생긴 사람들이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가부장제랑 육식이 뭔 상관? 오바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읽어보시길. 나도 100%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읽어보면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고, 개정판까지 나오면서 롱런하는 책은 다 이유가 있다.
다만 좀 재미없어서(최신 개정판은 다를 수도?) 호기심에 읽기엔 좀 부담스러울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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