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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에 현실 인물 나오는 걸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 걸까

by ₊⁺우산이끼⁺₊ 2025.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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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주인공이 배우거나 연예계 관계자인 현대 판타지 소설에 흥미가 생겨서 이것저것 읽다가 카카오페이지에서 홍보 돌린 신작, '원로배우지만 이번 생은 아역부터'라는 소설도 보게 되었다. 원래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무료분(보통 10화 이상)은 다 보는 편인데 이건 환생물이구나~ 하고 보다가 3화 읽고 껐다.

원로배우지만 이번 생은 아역부터(이다음)

검색해보니까 관련 뉴스 기사도 있던데 주인공이 누가 봐도 배우 이순재씨를 모티브로 했다. 지난 11월에 돌아가신 그 이순재 씨 말하는 거 맞다. 프로모션은 몇 개월 전부터 준비했겠지만 우연찮게도 이순재 씨가 돌아가신 뒤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 공개하게 된 것이다.

이미 해당 웹소설 댓글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이런 시기에 고인이 생각나는 소설을 홍보한 것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있지만 이순재 씨를 그리워하며 추모작으로 볼 수 있지 않겠냐고 의견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추모작이라는 의견은 좀 웃기다. 런칭할 때 쯤에 돌아가실 줄은 작가도 몰랐을 것이고 무엇보다 작가가 런칭 인사 댓글에 이순재 씨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이순재 씨를 모티브로 한 게 빼박인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주인공 이름이 '이근재'로, 이순재 씨와 한 글자만 다르다. 1회에서 이근재가 후배 최민우의 부축을 받으며 시상식 무대에 오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거 작년 12월 시상식에서 이순재 씨가 최수종 씨의 도움을 받았던 장면을 참고한 것 같다. 적어도 완전히 다른 이름을 쓰는 성의를 보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다못해 도움 주는 후배 이름까지 최씨라서 실제 인물과 매치될 수밖에 없다. 검색해보니 데뷔년이나 활동 기간도 비슷하다. 이름 한 글자 바꾸듯 조금씩만 바꿨다.

 

개인적으로는 뭔가 불쾌하고 기분이 이상해서 더 읽지 못했다. 모티브가 된 본인이나 주변인(유족, 친구 등)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배우였던 그의 작품들을 소비한 내 입장에서는 어딘가 기분이 이상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난 연예계 종사자가 아니므로 그 분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 그랬다.

웹소설에 현실 인물을 모티브로 쓴 게 많긴 하지만 왜 유독 이 작품만 불쾌하게 느낀 걸까 생각해봤다.

 

1. 역사적 인물 모티브 →괜찮음.

조선시대의 왕, 독립운동가, 과거의 유명한 예술가 등 오랜시간 전에 이미 사망한 유명인이 모티브인 건 괜찮다. 이 경우 보통 현대인이 빙의한 대체역사물이거나 역사적 인물의 현대 환생물이다.

대체역사물은 어쩔 수 없이 주변 인물들도 실제 인물 모티브인데 솔직히 쓰는 사람이 고통스럽지 읽는 입장에서는 그렇구나~하고 넘기게 된다. 내가 역사덕후도 아닌데 그들의 실제 성격이 어떤지 어떻게 아냐.ㅋㅋ

역사적 인물이 현대에 환생하는 건 해당 인물의 덕후가 아닌 이상 나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덕후라면 '그 사람이 이렇게 행동할 리가 없어!!'라며 안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경우엔 나와 가까운 인물이 아니라서 그런지 별 생각 안 든다. 뭔가 캐릭터로 인식되는 느낌?

 

아래에서 언급하는 '현실 인물'이라는 단어는 역사적 인물이 아닌 현대의 유명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2. 현실 인물이 까메오처럼 등장 →그럴 수 있음.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인물이 까메오처럼 잠깐 언급되는 건 그렇게 불쾌하지 않다. 예를 들면 소설 내용과 상관없이 주인공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레드벨벳이라는 설정 같은 거. 아예 새로운 인물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 정도는 그냥 웃기고 말 일이다.

 

3. 주변 인물이 현실 인물 모티브 →애매하지만 어느정도 괜찮음.

실제 인물 나오면 뭔가... 좀 깨는 게 있긴 한데 어쨌든 주인공으로 인해 뭔가 변하는 게 있으니 필력이 좋으면 보는 편이다.

내가 봤던 것 중에 좀 심했다고 느꼈던 건 '전천후 연예생활백서'다. 읽은지 좀 됐는데 실존 인물이랑 실제로 있는 프로그램을 가져온 게 너무 심하게 보였다. 특히 윤미정은 누가 봐도 배우 윤여정 씨다. 윤미정이 과거에 악녀로 떴다는 것까지도 실제 윤여정 씨의 삶과 일치한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봤는데 악녀로 뜬 작품 이름도 한 글자만 바꿨더라. 전천후가 관리하는 다른 배우들은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내 입장에선 누구 모티브인지 잘 모르겠어서 넘어갔는데 윤미정은 너무 노골적으로 윤여정 씨의 삶을 이용한 거라 좀 그랬다.

저렇게 실제 인물 대놓고 따온 걸 보고 있으면 본인 창작 기술이 부족하니까 날로 먹으려는 건가 싶기도 하다. 대체 다들 왜 이름은 한 글자씩 바꾸는 거냐. 그냥 아예 다른 이름 쓰면 안 되나? 솔직히 이름이 윤미정 아니었으면 몰랐을 수도 있다. 소설은 소설일뿐이니 누군가의 삶을 베꼈다고 생각 못 할 수 있지. 설마 집필하면서 완전 다른 이름 쓰면 윤여정 씨 모티브인 거 까먹을 까봐 그런 건가? 솔직히 주인공 잘생겼다고 계속 언급하는 것보다 이런 게 더 짜쳐....

 

4. 주인공이 현실 인물 모티브 →팬픽 쓰냐?

주변 인물도 모자라서 주인공이 현실 인물...

앞서 언급했지만 본인 창작 기술이 부족하니까 날로 먹으려고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원로배우지만 이번 생은 아역부터'에서는 이근재가 사망하고 환생했을 때의 이야기니까 이순재 씨의 삶을 갖다 쓴다고 볼 수 없긴 하다. 전생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이순재 씨 필모를 갖다 쓴 것 같다는 댓글이 있긴 했는데 안 읽어서 정확하지 않다. 다만 독자들은 배우 이순재가 환생하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 수도 있겠구나 하겠지. 소설 속 이근재가 허구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사람들은 이순재를 떠올리며 읽을 것이다.

소설은 인물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고, 그 상상을 위한 빌드업을 하는 게 작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실 인물 이름 한 글자 바꿔 놓으면 그게 창작인가? 그냥 팬픽이나 쓰지 왜 상업 활동 함?

 

현실 인물 모티브여도 이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어서 해당 인물을 잘 모르는 사람이면 오히려 더 재밌게 읽을 수도 있겠다. 알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꾸 생각나서 기분이 별로다.

 

뭐 어쨌든 저런 생각을 했다. 솔직히 현실 인물 나와도 재밌으면 보긴 해. 근데 이제 보다가 '이건 좀...'하게 되면 안 보는 것이다. 웹소설 볼 것도 많은데 굳이 애매한 걸 볼 이유가 없으니까. 주인공 하나 창작 못하는 사람의 필력이 좋을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나마 전천후는 뒷 내용이 궁금해지는 재미가 있긴 했음. 보다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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