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wins'가 성소수자만의 문구인가?

아이유 씨가 러브윈즈(Love wins)라는 문구를 노래 제목으로 사용해서 왜 성소수자 슬로건을 가져다 쓰냐는 논란이 생겼는데요.

성소수자 슬로건이면 이 곡이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저렇게까지 반응할 일인가 싶었거든요. 근데 공개된 손편지에도 딱히 성소수자를 위한 노래가 아니라서 논란이 더 커지고, 결국 지금은 'Love wins all'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과정이 어이없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좀 웃기기도 해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요.

 

일단 'Love wins'라는 문구는,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동성 결혼이 합헌이라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을 때 성소수자들이 사용했던 슬로건이라고 합니다. 2016년 미국에서 동성애자 클럽 총기난사 사건 때도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하고요. 이후 전 세계적으로 성소수자 집회나 관련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 난 몰랐는데? 그게 그렇게 유명한 문구야?'라고 한다면... 성소수자에게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 관련해서는 부정적이거나 재밌는 이슈만 널리 알려지지 않나요? 요즘 BL소설, 드라마가 인기를 얻었는데 그 사람들이 현실 성소수자한테 관심이 있을까요?

구글에 'Love wins'를 검색하면 지금은 아이유 씨로 인해 관련 사진이 많이 뜨는데 대부분 성소수자의 상징 중 하나인 무지개와 함께 있는 사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냥 '사랑이 이긴다'는 의미인데 왜 너희들 것인 것 마냥 화내?'라고 한다면 솔직히 할 말이 없긴 해요. 마치 무지개 가지고 '난 그냥 무지개를 좋아할 뿐인데 그게 왜 성소수자를 의미해?'라고 묻는 거랑 같은 거죠.

솔직히 저기에서 끝냈으면 그냥 성소수자들의 유난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저도 'Love wins'가 성소수자들만을 위한 문구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아이유 씨가 호모포빅한 말을 했던 것도 아니고 성소수자의 상징성을 뺏으려 했다는 건 좀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공개된 자필 노트(앨범 설명?) 때문에 더 불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Love wins'라는 문구보다 노트 내용 때문에 더 불타지 않았을까 싶어요.

누군가는 지금을 대혐오의 시대라 한다. 분명 사랑이 만연한 때는 아닌 듯하다

전 '대혐오의 시대'라는 말을 읽자마자 '아, 아이유가 진짜 성소수자 혐오에 대해 이야기할 건가 봐'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시대에서 '혐오'라는 단어를 보면 당연히 계속해서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혐오, 성소수자 혐오, 장애인 혐오 등등이 떠오르니까요.

요즘은 앨범 낼 때 하나하나 상징적인 것들을 많이 쓰잖아요. 한국 연예인들은 정치적 중립이랍시고 이런 이슈를 언급하는 걸 꺼려하는데 아이유 씨는 대놓고 할 생각인가 싶었습니다.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사랑하기를 방해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까지도 진짜?? 진짜??? 아이유 급 가수가 우리나라에서?? 했는데요.

뒷 내용에는 딱히 '혐오'와 관련된 내용이 딱히 없었습니다.

다섯 곡이 담긴 이 앨범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나의 팬들에게 바치는 두 곡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곡 Love wins다.
(중략)
한 번도 나를 혼자 둔 적 없는 나의 부지런한 팬들에게, 내 마음속에 끝없이 사랑을 길러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뜬금없이 그냥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 팬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방해를 딛고 애써 사랑하려는 사람들이 아이유 씨와 팬이라는 겁니다.

앞에 '대혐오의 시대'라며 사회 문제를 언급한 것치곤 굉장히 얄팍한 결론이라 좀 맥이 빠집니다.

'혐오'라는 단어를 사회적 의미가 아닌 사전적 의미로 이해하고 사용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그럼 사랑이 없어서 대혐오의 시대가 되었다는 요지의 글이 굉장히 순진한 소리가 되거든요. 뭔가 인류애적인 걸 언급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은데 좀 더 신중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지금은 'Love wins all'로 변경되었습니다. 팬송인데 괜히 퀴어들의 음악인 것처럼 알려지만 안 되니까요. 보니까 뒤에 'all'을 추가하느라 펜 색이 다르고, 브러시의 느낌도 좀 다르고 ㅋㅋㅋㅋㅋ 당장 일주일도 안 남은 앨범인데 담당자들 고생했겠어요.ㅠ

생각해 보니까 그냥 조용히 수록곡으로 나왔으면 넘어갔을지도 모르는데 하필 선공개곡으로 포스터까지 올려가며 나온 곡이라 크게 주목받은 것 같아요.